출퇴근 중 몰래 쓴 글 '대박'…"40대 '억대 수입' 작가 됐어요" [방준식 N잡 시대]

입력 2023-09-10 07:00   수정 2023-09-10 07:06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MBTI에서 'I(내향형)' 인간인 저는 인간관계로 인해 불면증과 두통을 심하게 겪었어요. 고민 끝에 찾은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말하더군요. '속 얘기를 말로 못 하겠으면 글로 써보라'고. 그때부터 출퇴근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던 유튜브나 SNS를 끊었습니다. 대신 메모장을 켜고 글을 썼죠. 왕복으로 100분. 그렇게 매일 저의 삶과 직장인의 고뇌를 담았어요. 그렇게 40대에 연재한 직장인 웹소설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죠. 최근에는 운이 좋게 책으로도 냈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작가로도 살고 있죠. (웃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넷플릭스처럼 영상화를 시도하는 곳들이 늘면서 좋은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넘쳐나지만, 대다수는 생각에만 그친다.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이 없어!'라며. 한 직장인은 달랐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메모장 앱을 켜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MZ세대 △직장 내 괴롭힘 △탈코르셋 △MBTI △정신과 상담 등 뜨거운 주제를 녹였더니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평범한 40대 직장인에서 작가로도 활동 중인 권도연 씨의 이야기다.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12년 차 직장인이자, 작가로도 활동 중인 권도연(41) 입니다. 국회에서 공무원은 아닌 일반 근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곳이라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요. 특히나 저는 위계질서를 따라야 하는 조직 생활에 부침이 심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MBTI로 'I(내향형)'죠. 어느 날부터인가 불면증이 심해져서 수면제 처방을 받으러 신경과를 찾았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속 얘기를 말로 못 하겠다면, 글을 써보세요'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 억울한 평가를 받거나,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해나 상처를 덤덤하게 썼어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상황을 극복하는 스토리였죠. 그렇게 엮어낸 책이 입니다. (웃음)"

Q. 책은 어떻게 내게 된 건가요.
"제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비즈니스 실무 스킬을 알려주는 구독 서비스인 '퍼블리' 관계자가 보고 연재를 제안해 주셨어요.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웹소설 <어쩌다 팀장>, <팀장의 파워게임>을 썼죠. 제가 출간한 책의 초기작인 셈입니다. 연재 당시 꽤 반응이 뜨거웠어요. 제가 겪은 직장생활의 에피소드를 담았거든요. '웹드라마 같다' '출근길에 위로받았다'는 댓글들이 힘이 됐죠. 그 후에 출판사에 연락받고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Q. 초기에 애로 사항이 있었나요.
"요즘 출판 시장은 그야말로 새로운 작가가 탄생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미 팬덤이 있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괜찮아 잘하고 있어'와 같은 위로하는 에세이를 쏟아내고 있죠. 아니면 TV에 얼굴을 비춘 사람이거나 패널로 나온 박사, 교수들이 전문 지식을 살려 책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특히 제가 쓴 리더십 분야의 책은 기업 강의하는 컨설팅 대표나 대기업을 퇴직한 임원 출신들이 쓴 것들뿐이었어요."

Q. 고민이 컸겠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이 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누가 내 책을 사기나 할까 봐 스스로 반문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반대로도 생각했어요. 이론은 비록 박사나 교수보다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회에서 겪은 경험은 차고 넘쳤으니까요. 직장에서 보고 겪은 국회의원만 수백 명입니다. 자연스럽게 리더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체득하고 있었죠. 심리학 전공도 도움이 됐습니다. 누구나 겪을 법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책이라면 대기업 회장보다 잘 쓸 자신이 있었어요. (웃음) 다행히 출판사에서 저의 자신감을 알아봐 준 것 같아요."



Q. 출판 과정이 궁금합니다.
"보통 책을 내는 방법은 5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출판사에 직접 내고 싶은 원고를 출간기획서와 함께 내는 투고 △출판 전문 업체에 내 돈을 내고 책을 내는 자비출판 △제작사에 원고를 맡겨놓은 후 주문이 들어오면 소량으로 찍어내는 POD 출판 △출판의 전 과정을 혼자 하는 독립출판 △저처럼 작가는 글만 쓰고 편집과 제본, 마케팅을 출판사에서 모두 기획하고 집행하는 기획출판이 있습니다."

Q. 꽤 방법이 다양하군요.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합니다. 기획출판의 경우 작가가 원고에만 집중할 수 있단 장점이 있지만 10% 미만의 인세를 받아요. 원고 외에 작가의 결정 권한이 많지 않다는 것 또한 가장 큰 단점이고요. <I형 인간의 팀장 생활> 제목과 표지 모두 출판사의 취향이었었거든요. 저는 <팀장도 일하기 싫어!>와 같은 가벼운 제목, 아니면 요즘 유행처럼 <출근하기 싫은 너에게> 같은 걸 제안했는데 칼 같이 거절당했죠. (웃음)"

Q.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에는 저는 이렇게 되물어요. '혹시 지금 글을 쓰고 계시는가요?'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글 쓰는 걸 좋아해야 해요. 저는 글쓰기를 하면서 조직 생활을 이겨냈어요. 글 쓰는 일이 스트레스가 된다거나 힘들면 할 수 없죠. 그리고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자기 검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거든요. SNS에 아주 짧은, 날 것의 문장부터 써서 공개해 보세요. 이후 점차 문장의 길이를 늘려나가면서는 내가 아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문장을 써보는 거죠.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주고 보는 책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 책 속에 △MZ세대 △직장 내 괴롭힘 △탈코르셋 △MBTI △정신과 상담 등 최근 이슈들을 모두 녹여냈어요. 다음에 책을 낸다면 △남녀갈등 △오피스 빌런 대처법 △자기 계발 △투잡러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Q. 출판을 통해 얻은 이점은 무엇인가요.
"1인 콘텐츠 시대잖아요. 인플루언서 한 명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공신력 있는 출판사를 통해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저만의 콘텐츠를 증명해 준 거라 생각해요."

Q. 초기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나요.
"글을 써 책을 내는 행위에는 초기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아요. 핸드폰만 있으면 블로그나 트위터, 페북 어디에도 문장을 쓸 수 있죠. 책 인세 수입은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인세만으로 생활하긴 힘든 수준이에요. 하지만 요즘 책을 원작으로 OTT나 TV 드라마, 영화 제작이 많이 되고 있어 제2차 저작물에 대한 수익은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최근 'I형 인간의 팀장 생활'을 원작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싶다는 판권 구매 문의가 여러 곳에서 들어왔어요. 통상적으로 신인 작가의 경우 책의 영상화 판권 계약은 5000만원에서 1억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직장 생활하면서 책을 썼다고 하니까 다들 '일 안 하냐?', '그럴 에너지가 있냐?'고 했어요. 그런데 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요. 책의 초안과 퇴고 전부 출퇴근길에 썼거든요. 직장까지 집에서 9호선 완행으로 50분이 걸려요. 왕복이면 하루 100분 동안 글을 쓸 시간이 생기죠. 주로 스마트폰 메모장을 이용했어요. 책이나 기사를 보고 인상 깊은 문장은 사진을 찍거나 필사해서 저장했죠. 저는 '책을 내고 싶은데 책 쓸 시간이 없어'란 말을 믿지 않아요."



Q.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도 있을까요.
"출간 후 두 달 정도 되니 독자들의 리뷰가 조금씩 쌓이고 있어요. 출퇴근하듯 각종 블로그, 서점 사이트에 업데이트되는 책 리뷰를 감상하고 있는데 정말 행복해요. 건조하고 답답한 직장인의 일상에 활력이 생긴 거죠. 제 생각을 적은 글을 누군가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라며 옮겨 적어 놓은 걸 볼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해요. 다행히 악플이 없지만, 아마 달리면 상처는 받을 것 같아요. (웃음)"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어느 독자분이 저에게 책을 읽다가 예전 직장 생활 생각이 나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다고 쪽지를 보내셨어요. 또 어느 분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그 자리에 다 읽어버렸는데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며 고맙다고도 했고요. 정말 다양한 이유로 직장인들이 괴로워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신을 '월급쟁이'라며 비하하지만, 온갖 진상을 견디고 매일의 지옥을 견디는 직장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직장인은 본업을 유지하면서 부업으로 책을 내고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에 좋다고 생각해요. 전업 작가보다 금전적인 여유도 부담도 적고요. 물론 가장 큰 장벽이 있죠. 바로 자신이요. 퇴근 하고 나면 피곤하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잖아요.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직장에서 기분이 나빴다고 그 기분 그대로 하루를 망치지 마세요.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뿐이에요. 자신을 스트레스 안에 내버려 두지 마세요.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주워 가겠어요. (웃음)"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여러 직업을 가지는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N잡 뿐만 아니라 NEW잡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준식의 N잡 시대>는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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